프랑스 고등학생 탄압: 자본주의 국가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공포 그 자체다!

협박, 억압, 그리고 공포! 이것이 바로 투쟁에 나선 고등학생들과 그들과 연대하는 대학생들의 엄청난 분노에 대한 부르주아 국가의 대응이다. 학교를 봉쇄하고 그 주변에서 시위하는 것이 금지된 젊은이들은,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극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과 대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교육부는 자원 부족과 긴축 정책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교사들을 향해서도 똑같이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며, 뻔한 변명만 늘어놓고는, 사소한 불만 표출조차 경찰을 동원해 진압하고 있다.
부르주아지의 본색이 드러나다
첫 번째 봉쇄 시위 이후, 경찰은 겨우 15살밖에 안 된 고등학생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기마대, 훈련된 경찰견, 폭력적인 진압, 최루탄, 섬광탄까지 동원하여 젊은이들을 진압하고 부르주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는 언론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미래의 노동계급을 야만적인 무리로 묘사하며, 이 참혹한 폭력 진압을 정당화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투르(Tours)에서는 한 젊은이가 한쪽 눈을 실명했고, 알랑송(Alençon)에서는 여학생 한 명이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아스니에르(Asnières)에서는 르누아르 고등학교 학생들이 24시간 동안 경찰에 구금된 뒤 낭테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생드니(Saint-Denis)에서는 교사들이 경찰의 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사슬을 만들어야 했다. 10월 1일까지 전국적으로 17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부상을 입었고, 거의 2,000명이 체포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기간은 ‘질서 유지’ 문제에 있어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은 계급 초월 운동인 ‘노란 조끼’ 투쟁을 맹렬히 탄압한 데 이어, 환경 운동, 특히 2023년 3월 두세브르(Deux-Sèvres) 주 생트솔린(Sainte-Soline)의 초대형 저수지 건설 반대 시위,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민족주의 운동, 교외 지역 폭동, 그리고 마요트(Mayotte) 섬에서 자행된 비열한 반(反)이민 작전 등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잔혹 행위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부르주아지는 항상 자신들의 진정한 계급 적대자인 프롤레타리아트에 가장 폭력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착취하는 사람들, 또는 미래에 착취할 대상을 언제나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탄압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게다가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을 탄압해 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보기를 들어, 1947년 '사회주의자' 레지스탕스 투사였던 쥘 모슈(Jules Mochle)는 식량 부족과 극심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벌어진 르노 공장의 '반란' 파업에 진압 경찰(CRS)과 군대를 동원했다. 이듬해 광산노동자 파업은 더욱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군대가 탄광을 점령했고 수많은 광산노동자가 사망했으며, 수천 명이 체포되어 해고당했다. 1979년 롱위(Longwy)와 드냉(Denain)에서는 진압 경찰이 난동을 부려 수많은 철강 노동자와 어린이들이 중상을 입었다. 한 젊은이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구타당했고, 한 노동자는 수류탄에 손이 잘려 나갔다. 1986년 데바케(Devaquet) 법안 반대 운동에서는 악명 높은 '볼티지외르‘(진압 경찰)가 다시 등장했다. 말릭 우세킨(Malik Oussekine)은 그들의 구타에 목숨을 잃었다. 2016년 '뉘 드부(밤샘 시위)' 운동 당시 경찰은 시위대를 포위하고 수많은 시위대에 부상을 입혔다. 그 이후로 사회 운동에 대한 '법질서' 집행은 더욱 강경해졌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조차도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 피착취계급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가장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1871년 파리 코뮌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페르 라셰즈(Père-Lachaise ) 묘지 벽 앞에서 잔인하게 처형당했던 사건이 바로 그 사례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국제적 혁명 물결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이 1919년 1월 베를린 봉기 당시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와 같은 가장 영향력 있는 혁명가들을 살해했다. 노동자 거주 지역에 대한 공중 폭격, 기관총 사격으로 프롤레타리아를 대량 학살하는 등, 어떤 야만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 젊은이들을 억압하고, 더 강경한 진압을 요구하는 경찰관들을 칭찬하는 마크롱 정부의 행태는 그들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를 유지하기 위해 최악의 행위도 서슴지 않는 부르주아지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위기와 고통이 심화할수록 지배계급은 더욱 허황된 "정당화"를 내세워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을 탄압하려 들 것이다.
무의미한 폭력의 함정
현재 고등학생 시위에 대한 어리석고 잔혹한 진압은 이미 커지고 있는 분노에 기름을 부을 뿐이다. 이러한 탄압은 불만을 증폭시키고 노동계급의 분노를 더 부추기고 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처럼, 노동자들(그리고 걱정하는 부모들) 또한 “무의미한” 폭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규탄하고 거부한다. 이러한 폭력은 부르주아 선전에 이용되고, 그들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르세유(Marseille)에서 소방차가 불에 탄 사건, 낭트(Nantes)에서 고등학교가 불에 탄 사건, 교사들에 대한 공격 등을 "도시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선정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국가는 선전을 퍼뜨리고 법 집행 기관의 잔혹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경찰과의 무의미한 충돌과 약탈은 단지 좌절감의 표출일 뿐이며, 무엇보다 더 큰 탄압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제공한다. 진정한 투쟁 방식은 그와는 정반대로 연대와 의식적인 집단행동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단결된 역동성을 구축할 수 있는 투쟁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독립적이고 공개적인 총회를 통해 투쟁을 주도하여 다른 노동계급으로 운동을 확장하고, 단결력을 높이고, 진정한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스페인 에어버스(Airbus) 노동자들의 파업과 20년 전 최초고용계약(CPE)에 맞서 싸운 학생들의 승리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들은 연대와 투쟁 전략을 통해 당시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CPE: 2006년 프랑스 정부가 청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도입하려던 '최초고용계약법’으로, 고용 후 최초 2년의 수습 기간은 고용주가 정당한 사유를 설명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맞서 대학생과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며 전국적인 총파업과 시위를 전개해 결국 정부의 법안 철회를 끌어냈다. <역자>)
오늘날 분노는 커지고 있으며, 투쟁의 이유는 어디서나 같다. 자원 부족, 긴축 정책, 전쟁과 급증하는 군사비 지출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스페인에서도 젊은이들이 파업에 나섰다. 독일에서는 의무 징병제 재도입의 첫걸음인 병역 개혁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나라마다 투쟁의 이유는 다양하며,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있다.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억압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능한 한 거대하고 의식적인 국제적 연대 투쟁뿐이다!
2026년 10월 1일
WH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사진 : 로이터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http://communistleft.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