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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등학생 시위
작성자
이승찬
작성일
2026-10-16 11:25:21
조회수
23

프랑스 고등학생 시위: 부르주아 국가는 젊은 프롤레타리아의 분노에 경찰봉으로 대응한다. 계급적 대응을 조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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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립학교 제도가 불타고 있다. 9월 18일 크레테유(Créteil)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는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했으며, 주로 노동계급 거주 지역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의 요구와 불만은 다양하다. 수업 결손 시간을 보충하기 위한 교직원 충원, 노후화된 고등학교 건물 개보수, 부족한 교육 기자재 및 과밀 학급 문제 해결, 그리고 계급 지배를 영속화하고 이른바 "우수한" 학생과 "부적절한" 학생을 선별하는 극단적인 엘리트주의 제도인 파르쿠르섭(Parcoursup)의 폐지이다. 파르쿠르섭은 특권층 자녀는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노동계급 자녀는 가능한 한 빨리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 착취당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운동이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노동계급 거주 지역의 '직업'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노동자의 자녀이자 미래의 노동자인 이 청년들은 프랑스 공립학교 제도와 그 허술한 능력주의의 첫 번째 희생양이다. 이들은 부르주아 국가가 부과하는 긴축 정책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계급이며, 이러한 공격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다. 또한, 이들은 교직원과 기자재가 부족하고, 건물이 너무 낡았고,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을 영속시키는 계급 기반 교육 속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이다. 이제 이 운동은 프랑스어권 벨기에까지 확산했다.

 

우리의 선배 혁명가들은 언제나 학교의 계급적 성격을 강조해 왔다. 학교는 사회 집단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중립적인 기관이 아니다. 학교의 계급적 성격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달려 있다. 독일 사회주의자 빌헬름 리프크네히트(1)는 이미 당대에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학교는 해방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동시에 예속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는 국가의 본질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해방의 수단이지만, 억압적인 국가에서는 예속의 수단이 된다. (...) 현대의 계급 국가란 그 본질상 자유의 결여로 정의되는 체제이다. (...) 이런 국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고용할 수 없으며 오직 복종하는 피지배계급만을 고용할 수 있다. 개성 있는 인물을 고용할 수 없으며, 오직 하인과 노예의 영혼만을 필요로 한다. '지적인' 하인이나 노예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유용하기 때문에(로마인들 또한 교육받은 노예를 높이 평가하여 더 비싼 값을 치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국가는 일정 수준의 지능을 보장한다. (...) 따라서 학교는 진정한 교육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훈련 기관이 된다. 학교는 인간을 교육하는 대신, 병영에서 명령을 충실히 따를 신병을 길러낸다. 또한, 뼈만 남을 정도로 착취당해도 항의 한마디 못하는 납세자, 그리고 골수까지 빨려 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본의 임금 노예를 양산해 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는 결코 젊은 노동자를 해방시킬 수 없다. 오히려 학교는 그들을 억압하고, 세뇌하고, 분류하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강력한 분리 수단이다. 이 운동은 많은 고등학생이 더는 기회균등이라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교육 기관에 대한 공격은 이러한 경멸받는 제도에 대한 정당한 혐오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프랑스 고등학교 교육 환경에 대한 재정적인 요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가난 속에서 공부하고 일하다가 결국 전쟁터로 내몰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체제 전체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이것은 존엄성을 되찾고자 하는 요구이며, 이러한 고난의 삶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움직임에 직면하여 부르주아지는 오직 한 가지 대응책밖에 없었다. 바로 극심한 폭력으로 악명 높은 진압경찰(CRS와 BRAV-M)을 보내 젊은 노동계급 고등학생들의 요구를 억압하는 것이었다. 그 피해는 이미 막대했다. 단 며칠 만에 5,0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많은 젊은이가 실명했다. 로랑 누녜스(Laurent Nuñez) 내무부 장관은 10월 2일 "자제하라는 지시도, 내무 보안군이 보유한 모든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도 없다"라고 선언했다.(2)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저 다행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국가, 국가의 상징, 그리고 억압 기구를 공격하는 것은 그들과 그들에게 이질적이고 돌이킬 수 없이 적대적인 이러한 제도들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 관계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혼란스럽다. 봉쇄 현장에서 너무 많은 프랑스 국기와 좌파 구호가 눈에 띄고, '"진정한 인민학교"를 요구하거나 프랑스 국가인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은 운동의 지도부에서도 드러난다. 노동계급의 가짜 친구들은 청년층을 포함하여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뤼크 멜랑숑( Jean-Luc Mélenchon)을 대선 후보로 내세운 「불복종 프랑스」(La France Insoumise)이다. 2027년 차기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박수갈채를 얻기 위해 시위 현장에 나가 운동을 이용하려 했던 이들은(3) 이제는 "비폭력"을 주장하며 경찰의 "도발"에 대응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심지어는 반응하지 말고 다른 뺨을 내밀라고까지 부추기고 있다! 프랑스 「코뮤니스트당」 사무총장은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과 젊은 "범죄자"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주의’ 좌파만이 유일한 함정은 아니다. 노동조합 역시 운동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10월 2일, 고등학생 연합(High School Student Unions) 회원들은 교육부를 찾아가 시위 중단을 조건으로 특정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협상을 시도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프랑스 노동조합 연대(inter-union alliance)는 예산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달 후에나 시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투쟁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투쟁은 노동자와 젊은 노동자의 것이며, 그들은 독립적인 총회를 조직하여 시위운동을 확대해야 한다.

 

한편, 자본의 극좌파는 이러한 시위를 이른바 ‘혁명적 물결’로 간주한다. 노동조합 산하 단체인 「주먹을 치켜든 사람들」(Le Poing Levé)과 함께 활동하는 「영구혁명」(Révolution Permanente)은 고등학생들의 투쟁을 사실상 ‘질서’에 맞선 ‘무질서(zbeul)’의 투쟁이라고 본다.(4)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 간 투쟁의 오랜 역사는 사라지고. 계급 사회의 역사는 사실상 반(反)권위주의 젊은이와 권력 간 세대 투쟁으로 결정된다. 이른바 “혁명적”(5) 시위를 값싼 정치적 포섭의 기회로만 보고,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이러한 탁상공론적 아나키즘은, 이러한 집단들이 젊은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계급의 의식 발전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노동계급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조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영구혁명」(Révolution Permanente)은 학생, 농민, 심지어 '노란 조끼' 운동과의 '가짜 연대'를 내세워 투쟁을 계급 간 동맹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린다. 오늘날처럼 혁명이 단지 말로만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곳곳에서 혁명을 찾아낸다면, 결국 이카로스(Icarus)처럼 자신의 날개를 태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 운동의 또 다른 약점은 바로 계급적 성격에 있다. 청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급이 아니다. 좌파 단체들(트로츠키주의자, 마오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등)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청년은 혁명 운동의 선봉대가 아니며, 과거에도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청년은 자본가계급 출신일 수도 있고 노동계급 출신일 수도 있으며, 그들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는 소속된 계급에 따라 다르다. 불행히도 코뮤니스트 좌파 내부를 포함하여 청년이 새로운 혁명 주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계급으로서 유일한 혁명 계급은 노동계급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인해, 자본주의가 우리를 몰아넣고 있는 야만 상태를, 투쟁을 통해 종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뿐이다. 프롤레타리아화된 청년들이 내세우는 요구는 분명히 정당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결실을 보려면, 청년들은 ‘계급협조주의’, ‘민주주의’ 환상, '시민의식'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단순히 좌파들이 바라는 대로 교직원과 학생들이 연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계급 전체와 단결해야 한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봉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긴축 정책, 고용불안, 생활·노동·학습 조건의 악화에 맞서는 통일된 구호를 바탕으로 투쟁을 전면화하고 확대해 나갈 때 비로소, 계급 전쟁을 불사하는 부르주아지의 끊임없는 공격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에 기반을 둔 이 체제의 근간까지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 및 그 억압 세력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수반할 것이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는 과거처럼 쉽게 어떤 개혁도 양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좌파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그 부속 세력들과도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국제 계급 정당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조직될 때만, 이러한 당면한 요구와 자본의 위기, 그리고 우리를 전쟁으로 내모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혁명적 대응의 필요성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10월 6일

자브(Xav)

국제주의 혁명그룹(Groupe Révolutionnaire Internationaliste)

 

<주>

 

이미지 출처: 페르피냥(Perpignan)의 아라고(Arago) 고등학교 외벽에 게시된 고등학생들의 요구 사항. fr.wikipedia.org

 

(1)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 1826–1900), 「지식은 힘이다 – 힘은 지식이다」(Wissen ist Macht – Macht ist Wissen). 1872년 2월 5일 드레스덴 노동자 교육 협회 기념행사와 1872년 2월 24일 라이프치히 노동자 교육 협회 창립 기념 행사에서 행한 강연(Verlag der Genossenschaftsbuchdruckerei, 1873년 출판). "자유 국가(free state)"와 "비자유 국가(non-free state)"라는 용어는 라살(Lassalle) 사상의 유산으로, 맑스는 1875년 「고타 강령 비판」에서 이를 정당하게 비판한 바 있다.

 

(2) contre-attaque.net

 

(3) 10월 6일 집회에서 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깃발과 스티커가 대거 등장한 점, 그리고 더 나아가 대표들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고등학생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낸 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술은 분명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4) revolutionpermanente.fr

 

(5) 19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구호 중 하나는 "움직이는 것은 모두 붉다"였으며, 이들은 1968년 5월 혁명을 1905년 혁명의 예행연습으로 간주했다. 행동주의(activism)의 비극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6-10-09/high-school-protests-in-france-the-bourgeois-state-responds-to-the-wrath-of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http://communistleft.jinbo.net/